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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철

진정한 독수리, 영원한 선발 투수 정민철 - Legend Players of Eagles, 1992년부터 1999년까지 8년 연속 10승 이상, 평균자책점 2.80, 109승 62패 평균 투구이닝 188이닝 등으로 기록을 남겼다. SK 와이번스의 포수 박경완 선수는 자신이 받아 본 공들 중에서 최고는 정민철 선수의 직구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통산393경기
  • 승161
  • 이닝2,394
  • 탈삼진1,661
  • 완봉승20

타임라임

숫자 23, 그리고 정민철

선수의 등번호는 선수를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영구결번 23번. 우리는 정민철이라는 이름에서 23이라는 숫자를 떠올린다. 우리는 23이라는 숫자에서 정민철의 야구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지금, 한화이글스에서 다시 없을 23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환하게 웃고 있는 정민철

1992년 빙그레 이글스 입단

1992년 소년의 등장

대전고를 졸업하고 고졸 지명으로 빙그레이글스에 입단한 그는 등번호 55번을 달고 마운드에 섰다.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을 기반으로 150km대 초반의 빠른 직구와 각도 큰 커브를 던지며 그는 화려한 투구를 시작했다. 상대방을 윽박지를 수 있는, 강한 공을 던지는 스물 하나의 이 젊은 투수가 이글스 선발 투수진의 든든한 기둥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데뷔 첫 해 14승. 독수리 둥지에서 이제 막 알을 까고 나온 신인 투수의 이 기록은 그의 야구 인생에 작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해 195이닝을 소화하고 3번의 완봉과 7 세이브까지 거두며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소년에 대한 호기심을 환호로 바꾸었다.

이닝 잡는 귀신, 정민철

1993년. 빙그레 이글스는 한화이글스가 되었지만 정민철은 여전히 ‘정민철’이었다. 2년 차 징크스라는 말은 이 빛나는 소년 앞에서 힘을 잃었다. 13승 3패, 방어율 2.24의 성적을 거둔 정민철은 개인 최초의 타이틀로 기억되는 93시즌 승률왕에 올랐다. 정민철은 이닝이터(Eater)라는 말로는 부족한, 이닝을 잡아먹는 귀신 같았다. 그리고 1997년, 무사사구 노히트 노런이라는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겼다.

1993년 승률 1위

1994년 탈삼진, 방어율 1위

1997년 무사사구 노히트 노런 기록 달성

1997년 5월 24일자 경향신문 기사
1997년 5월 24일자 경향신문 기사

1999년 한화이글스 대한민국 프로야구 최초 우승에 공헌

1999년의 우승, 정민철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1999년 정민철은 처음으로 ‘우승’을 맛보았다. 페넌트레이스 18승 8패로 개인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웠던 정민철은 한국시리즈에서도 2승을 거두며 한화이글스의 첫 우승, 그 한 가운데 서있었다. 데뷔 후 8년 연속 10승, 평균 자책 2.90, 평균이닝 188이닝! 단연 돋보이는 기록을 남기며 FA 자격을 얻은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투수 정민철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투수의 일본 프로야구 진출, 이 사실만으로 많은 팬들은 흥분했다. 정민철의 일본 프로야구 통산 전적 3승 2패. 혹자는 일본에서 거둔 그의 성적을 참혹했다고 평가한다. 팔꿈치 부상과 1, 2군을 오간 그에게 현지 적응에 실패했다고, 그간의 혹사로 인한 슬럼프가 찾아온 것이라 이야기했다. 그러나, 실제 그의 전적은 결코 초라하지 않다. 일본 프로야구 통산 3승 중 1승은 요미우리 입단 후 첫 등판 당시 야쿠르트를 상대로 7이닝 1실점으로 일궈낸 것이었다. 팔꿈치 재활이 끝난 후 1군 경기에서는 요코하마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었다. 정민철은 단순한 숫자적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2002년 정민철은 다시 독수리 둥지로 돌아왔다.

경기전 몸을 풀고 있는 정민철
경기전 몸을 풀고 있는 정민철

2002년 1,300 탈삼진 달성

2004년 프로통산 4번째 1,400 탈삼진

2005년 23번 정밀철, 독수리는 80년을 산다.

2005년, 그는 등번호를 23번으로 바꿨다. 마운드에서 힘껏 던지기만 해도 타자들을 압도할 수 있는 정민철이었지만 서른 중반의 그의 공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누군가는 그가 이제 예전의 모습을 잃었다고 이야기 했다. 누군가는 그는 더 이상 에이스가 아니라 했다. 정민철은 독수리의 선택을 해야 했다. 젊고 강한 투수의 모습을 잃었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노련하고 여유 있는 투수가 되는 것이었다. 직구의 힘이 빠진 자리를 제구력과 완급조절로 채워내며 그는 컨트롤 투수로의 변화를 받아들였다. 그는 단련과 변화의 시간을 거치며 제 2의 삶을 시작했다. 베테랑임을 내세우기 전에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제구력을 가다듬고 새로운 변화구를 연마했다. 힘이 실린 직구 대신 쓸데없는 힘을 빼고 필요한 힘을 써야할 때 쓰는 법을 익혔다. 그는 구속을 나타내는 세 자리 숫자 대신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을 찰나 보다 짧은 순간을 선택했다. 그의 Change of Pace는 타석 위의 상대를 무기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2005, 2006, 2007, 2008년까지 그는 꾸준히 100이닝 이상을 소화해내며 34승을 더 올렸다.

자신의 배번인 23번을 야구공으로 해놓고 그 뒤에서 환히 웃고 있는 정민철

2006년 1,500 탈삼진, 2,000 투구이닝 달성

2007년 프로통산 2번째 20완봉, 최연소, 최소경기 150승,
최연소 2,200 투구이닝 달성

2009년 9월 12일 은퇴식

2010년 한화이글스 1군 투수코치

독수리의 날갯짓은 멈추지 않는다.

2009년, 정민철은 플레잉 코치로 활동하던 그 해 9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고, 한화이글스는 정민철의 등번호 23번을 영구결번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1992년 4월 5일 처음으로 프로야구 마운드에 섰던 소년 정민철은 2009년 9월 12일 마운드를 내려왔다. 누군가는 정민철을 2등으로 기억할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그가 한화이글스의 레전드라는 것.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이룰 수 없기에 전설이다. 독수리의 날갯짓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내일을 위해 자신을 쇄신할 뿐이다. 지도자로서 그의 새로운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여전히 자신의 부리가 무뎌지지 않도록, 날개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바위산을 오르고 있다.

[한화이글스] 野한 Talk_정민철
등번호 23 - "누구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는 코치가 되는 게 제 꿈입니다. 그 꿈이 지금 제겐… 현역 시절 이루지 못한 200승보다 더 소중합니다." 박동희 컬럼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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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화
    2013/08/03

    지인한테만 인사하시고 나머지 팬은 다 그냥 돈으로 보이시나봐요 ㅎㅎㅎ

  • 신재현
    2013/07/22

    투수 좀 많이 끼워주세여 강하게여

  • 신재현
    2013/07/22

    코치님 저 신재현인데여 야구장에서 보면 펜북에 싸인 좀해주세여
    대전 야구응원 하로 자주 올께여

  • 조병래 프로필 사진
    조병래
    2013/07/22

    이제야 1군으로승격하셨군요.코치님 환영합니다.

  • 최성현
    2013/03/29

    힘내세요 마운드의 재건 독수리의 비상을 위해 화이팅!!!!!!

  • 김지연
    2013/01/07

    정민철코치님 힘내세요 동기이신 조성민선수몫까지 한화이글스가힘차게 비상할수있었으면
    좋겠네요ㅠㅠ

  • 신승환
    2012/12/3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김진
    2012/10/25

    팬입니다ㅠㅠ 머리 인성 실력 뭐하나 빠지지 않는 분이니 연수만 받고 오신다면 잘하실겁니다!!! 파이팅!!!

  • 정찬
    2012/07/07

    힘내세요!힘내세요! 화이팅!!!!!!

  • 권오헌
    2012/07/03

    ML>일본>3A>한국>2A>대만>1A=유럽>루키>독립>고교>>>최.강.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