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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훈

전설의 홈런왕, 영원한 4번 타자 장종훈 - Legend Players of Eagles, 1986년 연봉 300만원의 연습생으로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했다. 1990년 28홈런으로 유격수 최초의 홈런왕이 되었고 골든 글러브도 받았다. 1991년에는 35홈런, 1992년에는 41홈런을 치며 한국 프로 야구 사상 40홈런의 시대를 열었으며, 3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다.
통산1,950경기
  • 타율0.281
  • 타점1,145
  • 안타1,771
  • 홈런340

타임라임

전설의 홈런왕, 영원한 4번 타자!

전설의 홈런왕, 영원한 4번 타자!
한화이글스를 넘어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장종훈 선수는 1968년 4월 10일에 태어나 청주 용담초등학교 5학년까지 유도를 했다. 이수초등학교 시절 야구부를 본 뒤에는 유도를 그만두고 야구를 시작하게 된다.
이후 세광중학교와 세광고등학교를 거쳐 프로구단에 입단하려 했지만 어느 팀에서도 지명 받지 못 했다.

1986년 빙그레 이글스 입단

연봉 300만원 연습생

1986년 연봉 300만원의 연습생 신분으로 빙그레이글스에 입단한다. 당시 연습생이란 신분은 구단에서 정식으로 지명을 받은 선수가 아니라 현재로 보면 신고선수라고 할 수 있다. 기약도 없는 연습생 신분이었지만 장종훈 선수는 3년만 고생하자는 각오로 다른 선수가 2천 번의 스윙을 할 때 자신은 3천 번을 하고, 남이 잘 때 러닝을 하며 피나는 연습과 훈련을 거듭하던 중 자신의 선수 생활에 큰 힘을 주게 될 선수를 만나게 된다. 재일교포 출신으로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활동했던 고원부 선수.
어느 날 고원부 선수는 밤 늦은 시각에 장종훈 선수를 옥상으로 올라오게 하여 새벽 3시까지 함께 스윙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손에 굳은살이 배겨서 살이 터지기도 했다.
훗날 기자들이 장종훈 선수에게 홈런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어봤을 때, 그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손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손에 굳은 살을 보여주는 장종훈 선수
손에 굳은 살을 보여주는 장종훈 선수

1987년 4월 14일 : 첫 출장 vs 해태전

레전드의 서막

1987년 4월 14일 해태전.
드디어 프로 무대를 밟은 장종훈 선수는 "연습생 신화"의 첫 발을 내딛는다.
당시 배성서 감독이 부상을 입은 유격수 이광길 선수를 대신하여 3번 타순에 장종훈 선수를 기용했고, 첫 타석에서부터 시원한 2루타를 터트리며 그의 전설을 시작하게 된다. 이듬해 1988년 시즌에 들어서 빙그레이글스의 주축이 된 장종훈 선수는 그 해 타율 .241, 홈런 12개로 유격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받게 되었으며, 1989년에는 타율 .254, 홈런 18개로 빙그레이글스의 주포로 자리잡는다. 1990년에는 당시 문제점으로 지적받던 타격폼을 수정한 후 타율 .290, 홈런 28개로 유격수 최초 홈런왕에 오르게 된다.

1988년 골든 글러브 (유격수)

1989년 8월 31일 : 첫 만루 홈런

1990년 골든 글러브 (유격수) 타격 3관왕 (홈런, 타점, 장타율)

‘장종훈’이라는 이름을 알린 한일 슈퍼게임

1991년에도 장종훈 선수는 홈런, 타점, 장타율에서 1위를 달렸으며, 그 해 열린 한일 슈퍼게임에서 프로야구 팬들의 머릿 속에 그의 이름을 확실하게 새기는 사건이 발생한다. 1991년 열린 한일 슈퍼게임 5차전에서 장외홈런을 치는데, 경기가 열린 나가라가와 구장 최초의 160M 장외홈런이 되며 공이 떨어진 위치에 기념비까지 세워졌다(당시 일간스포츠 홍윤표 기자의 “슈퍼게임 취재기”에 따르면 실제 홈런 비거리는 120M) 23세의 장종훈은 그해 홈런, 타점, 득점, 안타, 장타율 1위를 하며 5관왕의 위업을 달성하였고, 최연소 100 홈런까지 치면서 잊지 못할 한해를 만들었다. 또한, 1992년에는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40 홈런 돌파하는 기록까지 세운다.

장외홈런을 기록한 나가라가와 구장
장외홈런을 기록한 나가라가와 구장

1991년 9월 14일 : 최연소 100홈런

1991년 정규시즌 MVP / 타격 5관왕 / 골든글러브 (지명 타자)

1992년 한국 프로야구 최초 40홈런 달성

1992년 정규시즌 MVP / 타격 3관왕 (홈런, 타점, 장타율) /
골든글러브 (1루수)

슬럼프 그리고 재기!

1993년 시즌에 들어서는 .295의 타율을 올리지만,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된다. 그리고, 빙그레에서 한화로 바뀐 1994년에는 타율 .267로 다소 부진하고 장타율도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며 주변의 우려를 받게 된다. 그러나, 1995년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난 해의 부진과 슬럼프는 모두 지워버린 장종훈은 타율 .326, 홈런 22개로 화려하게 부활했고, 장타율, 출루율 부문에서도 1위를 차지한다. 1996~1998년 4시즌 동안 44개의 홈런을 쳐내지만, 예전의 홈런왕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던 장종훈은 혹독한 훈련으로 자신을 채찍질하여 1999년에는 27개의 홈런, .284의 타율로 다시 한 번 화려한 불꽃을 태운다.

장종훈 기념비
장종훈 기념비

1995년 통산 타점 600 달성

1995년 타격 2관왕 (장타율, 출루율) / 골든글러브 (1루수)

1996년 통산 안타 1,000개, 1,000경기 출장, 홈런 200개 달성

1997년 2,000 루타 기록

홈런왕이기 전에, 인간이었던 장종훈

1999년 7월 10일 쌍방울전의 타석에서 투수 김원형 선수가 던진 2구를 정확히 통타한 장종훈의 타구는 투수 김원형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는다. 김원형 선수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투수의 얼굴에 맞은 공은 옆으로 흘렀다. 규정상 경기는 계속 진행 상태였다. 이런 경우 타자는 그냥 1루로 뛰면 내야 안타로 세이프다. 그러나 그가 달려간 곳은 1루가 아니라 김원형이 쓰러져 있는 마운드였다. 그 때 장종훈 선수는그렇게 투수에게 달려가 아웃 됨으로써 타율 순위가 1위에서 3위로 떨어졌다. 일단 먼저 1루에 도착한 후에 타임을 걸고 투수에게 달려가도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장종훈은 1루가 아닌 마운드로 질주했다. 자신의 기록보다 동료 선수를 먼저 생각하고 보호하려는 장종훈 선수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김원형은 그 후로 마운드에 있을 때 장종훈이 타석에 들어서면 항상 모자를 벗어서 경의를 표했다. 장종훈 선수가 레전드로 더욱 주목 받는 또 다른 이유는 단지 실력이나 기념비적인 기록을 넘어서 보여준 인간적인 모습이다. 그가 고졸임을 알고 명예학사를 주겠다고 제안한 대학들의 제의를 모두 거절하였는데 이에 대해 장종훈 선수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실 난 대학에 가고 싶었어요. 나중에 아이들한테 대학 나온 아빠로 기억되길 원했거든요. 그런데 나마저 대학을 가버리면 그 동안 날 좋아하고 열렬히 응원을 보냈던 고졸 출신들한테 바로 상처 주는 일이 되잖아요. 결국엔 대학가는 걸 포기하고 고졸 출신들의 우상으로 남기로 했죠. 지금은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 일요신문과의 인터뷰 2005.7.3
장종훈이 타격한 공에 맞아 쓰러진 김원형 투수. 광대뼈에 금이 가고 코 뼈가 내려 앉는중상을 입었다.
장종훈이 타격한 공에 맞아 쓰러진 김원형 투수. 광대뼈에 금이 가고 코 뼈가 내려 앉는중상을 입었다.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이 되다!

2000년에도 통산 300 홈런을 달성하며 녹슬지 않는 기량을 보여줬지만, 2001년부터 기량이 떨어져 1루수 자리를 김태균에게 넘겨주게 된다. 지명타자로 보직을 옮겨 활약하던 장종훈 선수는 2005년 9월 15일 대전 KIA전을 끝으로 은퇴하게 되었으며, 그의 등번호 35번은 한화이글스 구단 최초로 영구결번으로 지정된다. 2005년 은퇴 당시 장종훈 선수의 기록은 11타수 10 아웃 1 홈런. 마지막 안타가 홈런이었고,
그는 마지막까지 홈런타자였으며,
모든 구단 선수들과 팬들에게 축복받으며 은퇴한 한화이글스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2012]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10인_장종훈

2000년 6월 14일 1,500 경기 출장

2001년 통산 타점 1,000 달성

2002년 4월 17일 1,700 경기 출장

2005년 9월 15일 통산 1,950 경기 출장 후 은퇴식

등번호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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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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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주
    2018/05/03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오늘도 부탁드려요 ~~~

  • 신상훈
    2018/05/01

    메이저에서도 무사3루,무사만루에서도 점수못내는거 수두룩하게 나옵니다.그날은 운도 좀 없었어요.다만 선수들이 그런상황의 타석에서 너무 편하게 임하는 건 아닐까요. `주자못불러들이면 경기내준다`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임한다면 운도 따를 것입니다. 볼에 스윙하지 말고 2스트 전에 해결을 보는게 좋겠지요.

  • 신상훈
    2018/04/28

    근데 하주석 선수는 태생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직구, 변화구에 모두 대비하여 대응을 하되 가운데로 오는 공만 치라고 한번 해보심이 어떨까요. 워낙 방망이가 잘나오는 스타일이라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해야 볼에 반응안하고 스트라이크만 골라 치게 될 듯 합니다.

  • 신상훈
    2018/04/28

    코치님. 하주석 선수가 볼에 방망이가 잘나가면서도 가운데공에 무반응할때도 많다는 건 구종 게스히팅을 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봅니다. 요새 포수들이 영리하고 패턴도 다 달라 하주석 선수가 예측해서 치기가 쉽지 않기에, 운동 능력이 좋은 하주석은 그냥 모든 구종에 대비한 감각적 히팅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신상훈
    2018/04/26

    감독님, 코치님. 역시 호잉이 선두타자로 나오니까 분위기가 사네요. 하주석 바운드 안타 등의 운도 따르고요.ㅎ 오늘 기아의 너무 무리한 믿음야구 실패 때문에 이길 수 있었지만 타선은 9회전까지 계속 침체되어 있었죠. 역시 1번 타자엔 호잉이 제격인거 같습니다. 키가 크다고 1번하면 안된다는 법은 없죠.^^

  • 김광열
    2018/04/22

    그럼 한화를 위해서 신경써야 할 타자가 누구라고 생각되십니까?
    이용규 이제는 뜬 공은 타구 속도도 안나와 그냥 아웃이라고 봐야하고요.. 그런거 때문에 2루타 조차도 안나오는 지경입니다. 야속해도 프로입니다.
    프로라면 어차피 선수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고요

  • 김광열
    2018/04/22

    지금 이용규 체력 안배해줄 때입니까? 양성우 체력 안되서 타격 안되는게 뻔히 보이는구만 타선만 후위타선으로 바꾸어 준다고 타격이 돌아올거라 생각하십니까? 어차피 이용규는 내리막길이고요 내년이면 한화에 있을지 장담도 못하는 선수입니다.

  • 신상훈
    2018/04/20

    한화가 언더나 사이드형 투수에 약한 이유: 김성근 감독님 시절부터 배팅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그렇습니다.^^ 배팅볼은 오버핸드로 던지겠지요.그래서 너무 오버가 익숙한 겁니다. 가끔 배팅볼도 언더형으로 던져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보셨으면 합니다. 특히 언더형 상대 선발 경기를 앞두고는 그런 게 필요한듯 해요.

  • 김윤권
    2018/04/17

    홈런왕 장종훈!!
    당신의 존재로인해 한화팬이 되었습니다.
    이글스의 전설 KBO의 전설 항상 응원합니다!!

  • 박현옥
    2018/04/08

    넘 멋있어요 저도 고졸이지만 하나도 안창피합니다 제가 하고싶은 일을 하고있기에 전 당당하고 자랑스럽습니다